우리고장 영광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있어 예로부터 호불여 영광이라고 지칭 될 만큼 산수가 아름답고 어염시초가 풍부하여 인심 좋은 고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군동유적<출처:영광군지>
선사시대
영광군에 최초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시대부터였던 것으로 추측 된다. 청동기시대 유적이 143개소에 발굴 조사되고 있으며, 고인돌은 134개 지역에 712기가 분포하고 있고, 고인돌은 받침대 4개가 고인 기반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사람들은 주로 하천, 바닷가 등에서 살며 무문토기와 마제석기를 제작 사용하고, 농정 및 어로 도구들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당시부터 영광지역이 인간이 거주하기 좋은 적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삼한시대
청동기 문화에 뒤이어 철제도구와 경질토기의 사용시대인 철기 문화에 접어들면서 삼한 중 마한에 소속되게 되었다.
마한 54개국 중 영광읍 일대와 염산면 일대, 군남면 남창리 일대 등에서 3개국이 부족국가를 형성하였으며 토착세력을 형성하면서 인근의 부족과 융화하였다.
백제시대
백제 근초고왕(제13대, 재위 345~375) 때부터 영광지역에서는 무시이군(영광읍 일대), 고록지현(古祿只縣)(백수, 염산일대), 아노현(阿老顯)(군남면 일대) 등의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독립된 행정편제를 이루게 되었으며, 백제 침류왕(제15대, 재위 384~385) 원년에는 인도 고승 “마라난타”가 남중국 “동진”을 거쳐 지금의 법성 진내리를 통하여 도래, 전승한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서기 660년 신라ㆍ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토벌 때 영광은 저항이 심한 고을로 분류되어 당나라가 통치를 하였고, 경덕왕(제 35대, 재위 742년~765년) 16년 12월 무시이군을 무령군으로 개칭하였으며, 진성왕(제 51대, 재위 887년~897년) 6년부터 후백제의 세력에 들어가 멸망 시까지 통치를 받았다.
고려시대
후백제가 망하고 고려에 속한 무령군(武靈郡)은 우와산(牛臥山)에 우산고성(牛山古城)을 축성했고, 고려 태조(제1대, 재위 918~943) 23년(941년) 무령군을 영광군으로 고쳐 장성, 압해를 속국으로 무안군 소속이던 함농, 모평, 해제현과 장성군 소속이던 삼계현, 압해군 소속이던 염해현, 육창현을 속현으로 삼아 2군 6현을 다스렸으며 정주군 또는 오성군이라고도 칭했다.
고려 성종(제6대, 재위 981∼997) 11년(992년) 조세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어 개경 이남에 12개 조창이 개설되자 부용포(지금의 법성)에 부용창의 조창이 개설되었고 현종 때 전라도가 설치되어 도청 소재지를 전주에 두었는데 이 관할에 속하였다.
문종(제11대, 재위 1046∼1083) 때 성산읍성을 5년에 걸쳐 축성하고 모든 공청을 현 무령리로 옮기고, 부용포의 부용창을 법성포의 법성창으로 개칭하였다.
해동지도<출처:영광군지>
조선시대
조선 초기에 남영 북악이라 하여 남쪽에는 영광, 북쪽에는 황해도 연악군을 옥당골이라 칭하여 영예로운 별칭을 얻게 되었고 남도의 28개 고을의 조세를 관할하는 지역으로 중종(제11대, 재위 1506∼1544) 9년 법성포 영(진)을 설치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배치하였으며 조선(租船)이 38척, 조군(租軍)이 1,344명이 되었고 법성성(城)을 축성하였다.
정조(제22대, 재위 1776~1800) 13년 영광군은 29면 680리를 관할하였고 고종(제26대, 재위 1863~1907) 32년 전국이 23부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전주부 관할의 영광군이 되었다.
고종 33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전라남도에 소속되고 1914년에 내동, 외동, 산남 등 6개 면이 장성군에 편입되었고 지도군의 낙월, 위도의 2개 면을 넘겨받아 12개 면을 관할하였다.
대한민국
1955년 영광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11면을 관할했으며, 1963년 위도면을 전북 부안군으로 넘겨주었으며 1967년 안마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80년 백수면이 백수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군남면의 오동, 옥실리가 염산면으로 편입되고 군서면의 녹사, 학정, 송림, 신하리가 영광읍으로 편입되었으며, 1985년 홍농면이 홍농읍으로 승격되어 3읍 8개면이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7년 염산면의 월흥, 반안리가 군남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97년 군서면 보나리 일부(세월마을)가 영광읍 학정리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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